게임에 대한 소소한 고찰

바하무트 라군으로 알아보는 20세기 NTR 드리프트의 무서움

츤곰 2025. 3. 29. 19:01

※본 글의 가독성은 PC에 최적화 되었습니다※

본 글은 바하무트 라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내용은 작성자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임을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대충 이런 애들이 나와서 내 여자를 데려간다. 야메로

 

최근 만화나 웹툰 쪽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NTR 드리프트 

NTR 드리프트란 장르 이탈의 한 종류를 말하는데, NTR이란 작중 두 남녀간의 달달한 순애를 즐기던 독자들의 뺨을 후리고 다른 인물과 커플링을 엮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즉, 순애 전개에서 갑자기 NTR로 꺾어버리는 것을 NTR 드리프트라고 하는 것이다.

이 때 나오는 전개는 다양하다. 등장인물이 사실 악역이라 불륜 내지 바람을 핀 것일수도, 혹은 최면이나 불가피한 상황으로 강제로 마음을 빼앗긴다던지, 각양각색이다. 

 

"미안해요 철수씨, 저 이제 맹구씨가 좋아졌어요. 당신과의 사랑은 이제 끝이에용!"

하는 아침 막장극에서 보던 뭐 그런거.

 

하지만 개연성이 어찌 되었던 우리가 원하던 순애일변도의 그림은 찢어지고 없어졌다. 이는 순애를 소비하고 싶어서 컨텐츠를 구매하고 향유하던 소비자 기만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나 장르와 독자층에 대한 구분이 철저한 만화,웹소설 업계에서는 이런 장르 이탈과 같은 행위는 정말 금기와 다름이 없다. 클리셰 비틀기? 그런 것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내면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뭐 그런거다.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스퀘어 에닉스의 바하무트 라군(1996)

 

게임은 좀 다를까?

로맨스가 메인인 게임들은 흔히 말하는 미연시 장르로 다 빠져있어서 철저히 구분되어 있고, NTR 역시 성인 게임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전개가 되었다. 물론 인기 있는 게임 캐릭터에 대한 비처녀 논란 같은 것은 2차 창작러들 사이에서 있긴 하다만 다른 이슈들에 비해 게임 업계를 흔드는 사건사고 축에는 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쪽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쪽 미디어의 2차 장작에서 더 민감하게 다루는 이슈이기도 하고.

 

하지만 게임에는 NTR 드리프트의 유구한 역사이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아니 거의 신에 가까운 분이 존재하신다.

필자는 축구에는 메시가 있고 농구에는 조던이 있다면 게임에는 이 녀석 말고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1996년 스퀘어 에닉스가 낳은 바하무트 라군. SRPG 게임 중에서는 상당히 수작이고 09년도에 리메이크 됐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다. 하지만 그 정도였으면 그냥 과거의 유산정도로 끝났겠으나 지금도 여기 나오시는 등장인물께서 스퀘어의 3대 악녀 중 범접할 수 없는 최고봉이자, 스퀘어 최고의 흑역사 중 하나라는 악명이 자자한데는 이유가 있다.

 

청초하신 용안과 아름다운 자태는 전부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그란벨로스를 때려잡기 위해 일어난 반란군의 주인공 뷰와 그 그란벨로스에 의해 멸망한 카나의 공주 히로인 요요는 작중 초반에 교회에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교회에 둘만 들어가면 반드시 연인이 된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이 변치 않으면, 나중에 다시 같이 와줄래?

 

변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켠 유저들은 뒤이어 닥칠 재앙은 모른 채 그저 달달한 대사 한 줄로 읽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대사는 “마음이 변치 않으면” 이라는 if문으로, 스퀘어가 애당초부터 통수를 치려고 넣어놓은 제1 복선이었음을 지금은 알 수 있다. 

 

후반부도 아닌 초반부 1챕터부터 요요가 주인공을 통수까고 만난 남성은 팔파레오스라는 그란벨로스의 장군이다. 무려 요요의 국가와 국민들을 쑥대밭으로 만든 곳의 4번 타자 같은 사람인 것이다. 심지어 가족도 죽였다! 물론 당시 요요가 그란벨로스 감옥에 갇혀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때 포로답지 않게 예우를 갖추어 준 등 인간적인 면모로 대우해주어 마음을 열었다고 해석하는 측면도 존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퀘어 측에서 요요나 팔파레오스의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팔파레오스가 적극적으로 요요를 빼앗으려는 NTR악당의 면모를 보였으면 욕을 덜 먹었을텐데 요요는 이미 팔파레오스에 뿅가버린 나머지 드래곤을 타고 팔파레오스와 같이 날아가며 본 교회를 그가 “여기가 추억의 장소인가?” 라고 묻자 나름 전남친 리스펙트 해주는 착한 사람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시작의 장소라는 망언을 뱉어내신다. 

 

마음이 변치 않으면 다시 와줄래? 물론 난 무조건 온다고 안 했어 뷰

 

이에 분개한 유저가 교회를 부숴버리면 게임오버 당한다. 실제로 이 교회 박살내고 게임 끈 유저들도 대다수다. 그렇게 눈물을 참으며 교회를 몸 바쳐 지켜낸 후 주인공은 결국 요요를 팔파레오스에게 빼앗기고 약속과 추억의 교회로 팔파레오스와 요요가 들어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이거 컷씬도 아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움직여서 모든 걸 보고 스스로 나와야한다. 결국 하다 못해 나중에 뷰가 파르파레오스를 잡아 처형하려 하자, 앞을 당당히 막아서며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일이야 뷰..
보지 못하는 것...  알겠어? 우린 누군가를 위해 상냥해질 수 있는거야.

등등 온갖 미친 소리를 뱉어낸다. 뷰는 아직 어린 아이고, 나는 어른이 되어 많은 것을 깨달았다는 등 오은영 선생님 못지 않은 훈육 모드에 들어가신다. 적국 장군이랑 정분난 여자가 뻔뻔하게 교회를 지켜달라는 말을 꿋꿋하게 참고 막아주었더니 눈 앞에서 교회를 들어가질 않나, 반란군으로써 나라에 충성하기 위해 적 장군을 잡으려고 하니 상냥함 운운하면서 응애 취급하신다. 다시 한번 이를 악 물고 팔파레오스를 살려 보내줬더니만 나중가서는 팔파레오스와 요요가 동거하는 방에서 신음소리가 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요요의 침대를 조사하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왕녀의 xxx] 부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인게임 텍스트를 보아 틀림없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 맞다. 궁금하면 검색해보시길.

 

역사에 남을 대사 샐러맨더 보다 빨라!! (뷰의 드래곤보다 팔파레오스의 드래곤이 빠르시단다. 대충 전남친보다 쩔어! 이런 느낌이다. WTF..)

 

여기까지만 보면 정도는 좀 지나쳤어도 모든 미디어 통틀어 올타임 레전드로 선정될 정도인가 싶긴 하다.

필자가 이렇게 발광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 바하무트 라군은 앞서 말한 것들에 치명적인 조미료 하나가 더 추가되어서 상당히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바로 요요의 이름을 유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어리고 파릇한 청춘들이 요요에 이름에 자신이 짝사랑하거나 여자친구의 이름을 적어두고 즐기다가 그만...

 

 

아아, 맙소사. 여기까지 하겠다.

 

 

 

절대 내가 그렇게 플레이 하지 않았다.